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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정신을 담고, 인간의 삶을 담는 언어이며, 도시의 얼굴을 정의하는 예술이다. 이러한 건축의 위상을 상징하는 상이 바로 '프리츠커 건축상'이다.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은 지난 45년간 세계 건축계에서 가장 큰 권위를 자랑하며, 수상자 한 명 한 명이 동시대 건축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프리츠커는 건축가의 평생 작업 전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정되며, 수상자에게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이스 설리번(Louis H.Sullivan이 디자인한 청동 메달을 준다. 이 상은 건축가 개인의 명성과 더불어 그들의 작업이 도시와 사회, 문화에 미친 영향력까지 평가하는 상징적 좌표로 자리매김하며 한 시대의 건축 언어가 되어왔다. 이번 [A TO Z]는 견고함, 편리함, 아름다움 속에 인간의 삶을 담아온 건축의 본질을 프리츠커 건축상을 통해 들여다본다.








HYATT REGENCY ATLANTA

프리츠커 건축상의 기원은 미국 하얏트(HYATT) 호텔 체인을 창업한 프리츠커 가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리츠커 가문은 19세기 후반 시카고에 정착한 유대인 가문으로, 하얏트 그룹의 역사는 1957년 제이 프리츠커(Jay Pritzker)가 시카고 오헤어 공항 인근의 작은 ‘Hyatt House Motel’을 인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1967년, 제이 프리츠커는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를 개장하며 하얏트를 글로벌 호텔 브랜드로 이끌기 시작했는데, 이 호텔은 실내 중앙의 거대한 개방 공간인 ‘아트리움’을 도입하여 호텔 로비를 단순한 통로가 아닌,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인공의 광장처럼 바꾸었고, 유리 엘리베이터, 조각 작품 및 식물 등이 어우러져 디자인 혁신을 이루어낸 세계 최초의 현대식 호텔로 평가받는다. 이 아트리움은 단지 미적 감동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호텔 브랜드 차별화와 수익 증대에도 크게 이바지했으며, 이는 프리츠커 형제가 디자인 중심 전략에 주목한 이유이자 이후 프리츠커 건축상의 출발점이 됐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1979년, 제이 프리츠커와 그의 아내 신디 프리츠커(Cindy Pritzker)가 이 상을 창설했고, 하얏트 재단이 이 상을 운영하며 "건축이 인류의 삶을 향상하는 역할임을 널리 알린다"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프리츠커 가문은 하얏트 호텔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과정에서 공간의 디자인이 인간의 경험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이러한 철학은 단순한 호텔 사업을 넘어 건축 문화 후원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그들은 이 상을 통해 건축을 단순한 산업이 아닌 문화와 예술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특히 초창기 프리츠커 건축상은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한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사회에 미친 총체적 기여와 철학, 태도를 함께 평가하는 방향으로 운영됐다. 이 상은 단순한 업적 표창이 아닌 "당대 건축가들이 품어야 할 태도와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프리츠커라는 이름은 그렇게 태어났고,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화해 왔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25 프리츠커 건축상의 주인공

2025년 프리츠커 건축상은 중국 청두를 기반으로 활동해 온 류자쿤(Liu Jiakun)에게 돌아갔다. 류는 지역의 역사와 풍경, 사회적 맥락을 담아내며 조용하지만, 단단한 언어로 건축해 온 인물이다. 전통적인 중정의 공간 구성부터 재난의 잔해를 재료로 삼는 실험까지, 그의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지역의 기억과 공동체의 삶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작업은 풍경과 대화하며, 그 안에서 사람과 기억, 지역성이 엮인다. 조용하지만 세심한 태도로 지역과 공동체, 자연과 시간을 다루는 그의 건축은, 오늘날 '건축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담백하게 대답한다. 아래 다섯 작품은 그가 왜 오늘날 건축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준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웨스트 빌리지 ㅣ West Village ㅣ 2015 ㅣ 청두

도시 블록을 역동적인 중심지로 변모시킨 5층 규모의 복합단지. 구불구불한 통로와 서로 연결된 안뜰들이 이 공간의 핵심이다. 건물 외곽을 따라 흐르는 경사진 산책로는 도시 안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내부 곳곳에 배치된 정원과 녹지는 공동체적 감각을 회복하게 한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빗물 순환 시스템과 자연광·자연환기를 최대화한 설계는, 리우가 지향하는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쓰촨 미술학교ㅣ Sichuan Fine Arts Institute Sculpture Department ㅣ 2004 ㅣ 충칭

좁은 부지 위에서 창의적으로 완성된 공간. 상층부는 캔틸레버 구조로 돌출되어 조각적 매스를 이루며, 외벽은 지역의 모래 석회로 거칠게 마감되어 있다. 단순한 예술 교육 공간을 넘어 지역성과 물성의 결합을 탐구한 작품으로 지상층에는 야외 테라스가 계단처럼 이어지며, 전시와 공연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시계 박물관 ㅣ Watch Museum ㅣ 2007 ㅣ 청두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기하학적인 형태를 구현한 박물관. 중앙의 원형 전시관은 넓은 지붕 개구부를 통해 자연광을 끌어들이며, 지붕은 일종의 해시계 역할을 한다. 붉은 벽돌은 청두의 겸손한 과거를 상징하고, 내부의 시계들과 따뜻하게 조화를 이룬다. 빛과 열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루버 설계는 이 공간에 섬세한 온도와 리듬을 부여한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후 후이산 기념관 ㅣ Hu Huishan Memorial ㅣ 2008 ㅣ 중국

2008년 원촨 지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 영구적인 콘크리트 조형 텐트 형태로 설계되어 단순한 형태 안에 강한 감정적 힘을 담았다.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새겨진 벽은 방문객이 직접 손으로 만지며 사고를 기릴 수 있도록 했고, 주변의 작은 정원은 고요한 사색의 장면을 만든다.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톈바오 동굴 지구 리노베이션 ㅣ Tianbao Cave District Renovation ㅣ 2021 ㅣ 루저우


톈바오 산의 절벽을 따라 자리한 문화센터. 캔틸레버로 돌출된 리셉션 홀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거울 전시관은 자연 풍경을 반사하며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고대 동굴 공간에 태양광 패널과 빗물 저장 시스템 등을 통합하며, 과거와 현재, 자연과 건축의 대화를 실현한 프로젝트다.







프리츠커의 언어로 읽는 다섯 개의 건축

프리츠커 건축상의 역사에서 몇몇 작품은 단순히 한 건축가의 개별적 성취를 넘어, 건축사적 전환의 순간으로 기록된다. 아래 다섯 작품은 대중적 인지도와 상징성을 넘어, 건축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시대의 건축 담론을 이끌어낸 작품들이다. 


PHOTO BY MICHAEL SIEBERT ON PIXABAY

루브르 피라미드ㅣLouvre Pyramidㅣ1989ㅣ프랑스 파리

I. M. 페이(I. M. Pei)의 루브르 피라미드는 역사와 현대의 극적인 대화를 완성한 상징적 작품이다. 고전주의 건축의 결정체였던 루브르 궁전 한가운데, 첨단 유리와 금속 구조의 미니멀한 피라미드를 삽입한 이 프로젝트는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역사적 맥락 속에 현대 건축이 개입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며 건축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루브르 피라미드는 문화기관의 새로운 중심성과 접근성을 재정의했으며, 현대 건축이 도시와 시민의 기억 속에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선구적 사례로 평가된다.


GUGGENHEIM BILBAO MUSEUM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ㅣGuggenheim Bilbao Museumㅣ1997ㅣ스페인 빌바오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독특한 형태의 문화 시설이 도시 전체의 이미지와 경제 활성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이 현상을 일컫는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현대 도시문화의 상징이다. 조각적이고 파격적인 외관은 20세기 말 해체주의 건축의 정점으로 평가되며, 건축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도시 경제와 문화 전략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선명히 보여주었다.


IBARAKI KASUGAOKA CHURCH

빛의 교회ㅣChurch of the Lightㅣ1989ㅣ일본 오사카

안도 타다오(Tadao Ando)의 빛의 교회는 콘크리트라는 거친 물질과 자연광의 섬세한 교차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화를 통해, 감각적이고 영적인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내부에는 장식 하나 없이 십자가 형태로 스며드는 빛만이 공간을 지배하며, 건축이 단순히 기능적 울타리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울리는 경험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교회는 단순한 형태와 물성이 빚어내는 감각적 깊이를 통해, 현대 건축에서 ‘감성적 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정립한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YONHAP NEWS

퐁피두 센터ㅣCentre Pompidouㅣ1977ㅣ프랑스 파리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퐁피두 센터(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 공동 설계)는 구조와 설비를 건물 외부로 과감히 드러내며, 기존 건축의 틀을 전복한 하이테크 건축의 상징이다. 이 실험적 디자인은 배관,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색깔별로 표기하여 건물 외피에 그대로 드러냈고, 내부를 개방형으로 구성하며 ‘투명하고 열려 있는 문화 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심 한가운데 실현했다. 퐁피두 센터는 단순히 미술관을 넘어, 문화기관이 도시와 시민에게 어떻게 다가설 수 있는지를 새롭게 정의한 건축적 선언으로 평가된다. 


SERRALVES MUSEUM 

세랄베스 미술관ㅣSerralves Museumㅣ1999ㅣ포르투갈 포르투

알바로 시자(Alvaro Siza)의 세랄베스 미술관은 “맥락적 건축”의 교과서라 불리며, 건축이 지역 환경과 문화적 맥락에 어떻게 깊이 응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작이다. 시자는 주변 풍경과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절제된 형태와 미묘한 디테일, 소박한 재료로 장소성을 극대화했고, 건물은 단순히 전시공간을 넘어 자연과 도시, 방문자의 움직임이 조용히 어우러지는 하나의 경관으로 기능한다. 세랄베스 미술관은 글로벌 모더니즘에 대한 지역적·비판적 대안으로 자리 잡으며, ‘조용한 모더니즘’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ARCHITECTURAL BUEAU SAPRYKIN & POUZIREVA

서양의 스타 건축가 상?


프리츠커 건축상이 처음 제정됐을 때, 그 기준은 비교적 단순했다. 독창적인 디자인, 뛰어난 미적 완성도,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혁신성에 집중했고, 1980~90년대의 수상자들은 이 기준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들이었다. 프랭크 게리,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렌조 피아노,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등은 모두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혁신적으로 바꾸며 현대 건축의 ‘얼굴’을 만든 이들이다. 당시 프리츠커는 ‘스타 건축가의 상’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유명인 중심의 수상 명단을 내놓았고, 이러한 흐름은 상업적 이미지가 강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서구 중심성은 가장 먼저 지적된 문제였다. 당시 수상자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 출신이었고, 비서구권 출신 건축가들은 철저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이에 “프리츠커가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취향만 대변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1995년 안도 타다오의 수상은 프리츠커의 철학에 변화를 예고하는 전환점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루이스 바라간(Luis Bárragan 1980, 멕시코), 단게 겐조(Kenzo Tange 1987, 일본), 마키 후미히코(Fumihiko Maki 1993, 일본) 등이 수상했지만, 이들은 당시 “국제 모더니즘”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기에, 비서구 고유의 건축언어를 인정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안도는 일본의 전통적 미학과 장소성, 자연과의 관계를 적극 해석한 독자적인 건축언어로 평가받았고, 그의 수상은 프리츠커가 비서구 지역의 고유 건축언어를 진지하게 인정한 첫 사례로 여겨진다. 


ZAHA HADID ARCHITECTS

최초의 여성 수상자

젠더 불평등도 뼈아픈 지점이었다. 건축은 역사적으로 권력 공공성, 대규모 기술과 긴밀히 연결된 분야였기에 남성 중심적으로 발전했고, 근대 건축 교육 과정에서도 여성의 진입이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제한됐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스타 건축가 = 남성 천재” 라는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이런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면서 ‘건축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남겼다. 프리츠커 건축상의 25년 역사 또한 그랬다. 2004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여성 최초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기 전까지 모든 수상자는 남성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여성 최초의 수상자가 아니었다.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태생의 비서구권 여성 건축가로, 젠더 문화, 지역의 다원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상은 프리츠커의 수상 기준의 변화를 촉발하는 전환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다른 변화의 계기가 됐다.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가 위축되며 건축계의 관심이 ‘대규모 조형’에서 ‘지역사회,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더이상 ‘스타 건축가’의 이미지에만 집중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동시에 2010년대를 전후로 세계적으로 젠더 평등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1991년 수상자였던 로버트 벤추리(Rober Venturi)의 파트너였던 여성 건축가 데니스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이 “공동 작업자였지만 수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이 2010년대 들어 재조명되며 프리츠커에 대한 비판이 집중됐다. 이 비판은 프리츠커 운영위원회에도 압박으로 작용했고, 젠더 문화적 다양성을 수상 기준에 적극 반영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 세지마 카즈요(Kazuyo Sejima)와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가 이끄는 남녀 혼성 듀오인 SANAA의 수상은 그 흐름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STEVEN HOLL ARCHITECTS KENGO KUMA & ASSOCIATES

프리츠커, 기준을 둘러싼 담론


프리츠커는 한때 “건축의 정점”을 상징하는 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건축을 단순히 조형미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출발해 도시의 맥락, 지역사회와의 관계,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 더 복잡하고 섬세한 가치들을 평가 기준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변화로 인해 최근에는 건축의 규모나 화려함 대신 지역성과 공동체에 이바지한 건축가들이 주목받는다. 아프리카에서 지역 주민과 흙벽돌로 학교를 지은 프란시스 케레(Francis Kéré, 2022 수상), 기존 주택을 철거하지 않고 리노베이션을 통해 주거 환경을 개선한 라카통&바살(Lacaton & Vassal, 2021 수상) 등이 그 예다. 프리츠커의 수상 기준은 이제 “어떤 건축이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건축이 지닌 ‘순수 예술로서의 가치’가 점점 평가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스티븐 홀(Steven Holl)이나 구마 켄고(Kengo Kuma) 같은 세계적 거장들이 여전히 수상하지 못한 사실은, 프리츠커의 선택이 단순히 건축적 성취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시대적 담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곧, 형태와 공간, 빛을 다루는 예술적 탐구와 독창성 자체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고, 사회적 기여와 맥락적 의미가 더 우선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축을 읽는다는 건 결국 공간과 형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건축적 요소들에도 저마다의 이름과 개념이 있고, 이 용어들을 알면 일상의 풍경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매스(Mass)
건물의 덩어리, 입체적 외형을 뜻하는 용어로 ‘매스 스터디’는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배치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볼륨(Volume)
건축 공간의 3차원적 크기와 입체감. 매스가 외형의 형상을 다룬다면, 볼륨은 내부 공간의 크기와 감각에 초점을 둔다.

캔틸레버(Cantilever)
한쪽 끝만 고정한 채 다른 쪽으로 돌출된 구조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Roid Wright)의 ‘낙수장(Fallingwater)’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필로티(Pilotis)
건물을 기둥 위에 띄워 1층 공간을 비워두는 구조 방식.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근대 5원칙 중 하나로, 땅과의 접촉을 최소화해 공간의 자유를 확보.

파사드(Facade)
건물의 전면부 외벽이다. 건축에서 ‘얼굴’에 비유될 만큼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외관 디자인의 상징성을 담는다.

보이드(Void)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 실내외 흐름과 시각적 개방감을 위해 설계되며, 공간의 여백과 통로 역할을 한다.

아트리움(Atrium)
건물 내부의 크게 뚫린 중앙 홀. 자연광과 개방감을 제공하며, 여러 층을 관통하는 구조로 설계된다.

루버(Louver)
빛과 바람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된 수평 또는 수직의 날개 구조.

스팬(Span)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 스팬이 길수록 넓은 대공간 형성이 가능하지만, 구조적 기술의 도전도 커진다.

트러스(Truss)
삼각형 모양으로 구성된 골격 구조.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큰 스팬을 확보할 수 있으며, 다리, 지붕, 대형 구조물에 주로 사용된다.







국내에서 만나는 프리츠커 건축

미술관, 기업 사옥, 문화 공간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도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대표작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건축물들은 각 건축가의 고유한 언어로 도시의 풍경을 바꿨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공간과 재료, 빛과 동선으로 구현된 사유의 결과물들이다. 이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프리츠커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대 건축이 우리 삶에 어떤 감각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LEEUM HOAM

리움 미술관 ㅣ Leeum Museum of Art ㅣ 2004 ㅣ 서울 용산

리움 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2004년 개관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건축 명소로 자리잡았다. 독특한 점은 설계에 무려 세 명의 프리츠커 수상자가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뮤지엄1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붉은 벽돌과 기하학적 형태로 설계했으며, 뮤지엄2는 장 누벨(Jean Nouvel)이 금속과 유리를 사용해 대비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시관과 부대 시설을 아우르는 삼성 어린이 교육문화센터는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하며 이 공간의 건축적 완성도를 높였다. 세 건축가의 개성이 공존하면서도 서로 대화를 이루는 리움 미술관은 그 자체로 건축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컬렉션뿐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동선, 재료와 질감의 긴장감 속에서 동시대 건축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AMOREPACIFIC

아모레퍼시픽 사옥 ㅣ Amorepacific Headquarters ㅣ 2017 ㅣ 서울 용산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2023 수상)의 작품이다. 2014년 착공해 2017년 완공된 이 건물은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정제된 입방체 형태로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거대한 코트 야드와 각 층의 루프가든이 내외부를 연결한다. 외관의 얇은 루버는 건물 전면을 둘러싸고 있는 커튼처럼 빛을 조절하며 입면에 리듬감을 더한다. 이 건물은 한 기업의 사옥으로서 역할 뿐만 아니라 1~3층을 시민에게 개방하며 문화와 도시를 연결하는 공공적 장소로 기능한다. LEED 골드 등급을 획득하며 친환경적 가치까지 갖춘 이곳은, 현대 도시 속에서 ‘열린 기업 공간’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는다. 

PHOTO BY INBEOM LEE

송은 ㅣ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ㅣ 2021 ㅣ 서울 강남


2021년 새롭게 재개관한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작품으로, 스튜디오의 한국 첫 실현 프로젝트다. 도산대로에 있는 이 건물은 날렵한 삼각형 콘크리트 매스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외벽은 낙엽송 거푸집의 질감을 살린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되었으며, ‘숨은 소나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표현한다. 1층의 깊게 절개된 개구부는 거리에서 바로 진입 가능한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고, 내부는 지하에서 지상까지 다양한 전시 공간과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나선형 계단과 보이드 공간은 자연광과 도시의 흐름을 내부로 유도하며,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예술과 건축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YONHAP NEWS

동대문디자인플라자ㅣDongdaemun Design Plazaㅣ2014ㅣ대한민국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2014년 완공 이후 서울의 대표적 디자인·문화 허브로 자리 잡았다. 설계자는 곡선의 마법사로 불리는 자하 하디드. 기존 동대문 운동장 부지를 감싸 안듯 흐르는 곡선적 형태는 자하 하디드 특유의 유기적 건축 언어를 구현한 대표적 사례다. 철골과 알루미늄 패널이 교차하며 형성한 파사드, 대지의 고저 차를 활용한 지하 공간과 공공광장은 도시와의 경계를 지우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된다. DDP는 도시의 동선과 장면을 재구성한 새로운 공공적 실험이자, 서울의 패션과 디자인 산업의 거점으로, 하디드의 마지막 대표작 중 하나다.

PHOTO BY INBEOM LEE

뮤지엄 산 ㅣ Museum SAN ㅣ 2013 ㅣ 강원 원주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SAN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공간으로,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극대화한 명상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SAN'은 Space, Art, Nature의 약자로, 이름 그대로 탁 트인 산속 풍경과 예술, 공간의 삼위일체를 지향한다. 뮤지엄 SAN은 안도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수평과 직선의 엄격한 기하학, 물과 빛을 활용한 공간 연출이 곳곳에 스며 있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긴 진입로는 방문자에게 자연 속을 걷는 듯한 감각을 주며, 건축 그 자체가 하나의 체험으로 작동한다. 특히 뮤지엄의 하이라이트인 '워터가든'과 '명상관'은 빛과 그림자의 흐름 속에서 고요한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며, 안도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꼽힌다. 강원도의 대자연을 품은 뮤지엄 SAN은 '감성적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건축이 전달할 수 있는 정적이고 명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MIMESIS ART MUSEUM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ㅣ Mimesis Art Museum ㅣ 2009 ㅣ 경기도 파주

파주 출판단지 한복판에 자리한 미메시스 뮤지엄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대표작으로, 그가 지닌 ‘맥락적 건축’ 철학을 한국의 풍경에 담아낸 공간이다. 외관은 곡선으로 부드럽게 감싸안은 콘크리트 매스가 특징이다. 통상의 직선과 모서리가 강조된 전시 공간과 달리, 시자는 곡선을 통해 공간의 흐름과 중정을 감싸는 감각적 리듬을 만들어냈다. 내부로 들어서면 창이 거의 없는 외벽 덕분에 자연광은 주로 천창과 중정을 통해 은은하게 스며든다. 내부에는 인공조명이 설치되지 않아 자연광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공간 자체가 전시 일부로 기능한다. ‘고양이’의 몸짓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시자의 설명처럼, 공간 전체가 한 마리의 유려한 동물처럼 굽이치며 관람객을 인도한다.








YONHAP NEWS

프리츠커와 한국 건축


많은 사람이 “왜 한국은 아직 프리츠커 수상자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본은 7차례나 수상했는데 말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건축가 개인의 역량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일본은 기후적·문화적 조건에서 단독주택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나라다. 지진이 많은 환경에서 고층 건물은 유지와 관리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목조 1~2층 주택이 일본인의 일상적 주거의 표준이 되었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생기는 다양한 주택에 대한 수요는 젊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젝트로 빠르게 독립할 수 있는 실험의 기회가 되었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 이후 압축적 도시화와 고밀도 개발의 길을 걸었다. 재개발과 재건축 중심의 주택 공급이 도시의 표준이 되었고, 대규모 시공사 중심의 설계 시스템은 개인 건축가가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를 제한했다. 표준화된 아파트 단지가 도시 전역을 채우면서 그 결과 일본처럼 다양한 니즈를 지닌 건축주층도 형성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환경에서 건축가의 독창적 작업이 일상 공간에 스며들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주요 공공 건축물의 설계가 해외 스타 건축가들에게 집중된 것도 중요한 맥락이다. 서울의 상징적 건축물 중 상당수가 국내 건축가의 손이 아니라 해외 유명 건축가들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24년도 프리츠커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Riken Yamamoto)은 이에 대해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정작 한국에선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하고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해요.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에겐 기회를 주고요. 이상해요”라고 말하며, “자유도가 전혀 없는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흐름은 국제적 명성을 얻고 세계무대에서 주목받아야 하는 한국 건축가들의 기회를 더욱 제한해왔다.

서울의 프리츠커 건축 예정작

서울은 여전히 해외 스타 건축가들의 무대다. 최근에도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설계가 예정된 두 개의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서울 한복판, 또 하나는 강남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이 도시의 건축 풍경은 여전히 해외 거장들에 의해 갱신되고 있다.


OMA

홍익대 지하 캠퍼스는 OMA와 렘 콜하스의 설계로 진행 중이다. “뉴홍익 서울캠퍼스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폐쇄적 대학교 캠퍼스를 지하화하고 그 위로 개방형 광장을 올리는 계획이다. 축구장 20개에 달하는 연면적, 지하 6층에서 지상 16층까지의 스케일, 그리고 여러 방향의 축이 교차하며 공간을 중첩하는 실험적 구조는, 도시 한가운데서 새로운 흐름과 축선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이곳은 단순히 캠퍼스 공간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살아 숨쉬는 열린 인프라로 기능하게 된다. 2025년 착공, 2029년 완공이 목표다.

YONHAP NEWS

강남구 서초동 옛 정보사 부지에는 서리풀 수장고가 들어선다. 설계자는 스위스의 헤르조그 & 드 뮈롱. ‘보이는 수장고’를 콘셉트로, 100% 공개형 보존·복원 공간을 지향한다. 작품의 보관과 관리 과정까지 관람객에게 열어두겠다는 시도다. 1층에는 시민들을 위한 정원을, 6층에는 카페를 배치해 기존 수장고의 폐쇄적인 이미지를 완화하고, 도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강렬한 물성과 단순한 매스가 도시 속에 또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더할 것이다. 2028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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